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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창업, 세 번의 도전들을 돌아보며 : 1. 시그널로 시작하다

6 min readDec 2,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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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일종의 창업 기록이다. 크나큰 교훈도, 엄청난 감동도 없다. 단지 첫 창업의 기억을 돌아보기 위해 기록했다.

총 세 편에 걸쳐 최대한 브리프하게 풀어내려 노력했으며, 당시 나의 생각이나 배움에 대해서는 추후 다른 글에서 풀어내고자 한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에)”

이건 그냥 내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궁금한 분들을 위한 글이다.

창업을 시작한건 20년 1월이었다.

0. 첫 번째 도전, 시그널

시그널 : 좋아하는 친구에게 익명으로 문자/인스타 DM을 대신 보내주는 모바일 어플

19년도의 나는 아이템은 없었지만 20년에는 무조건 휴학을 하고 창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운 좋게도 연말까지 가슴이 뛰는 아이템을 찾을 수 있었고, 그 아이템을 같이 할 사람을 모으기 시작했다.

“당시의” 나는 개발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우선 개발을 맡아줄 사람을 찾으러 다녔다.

1. 정상 출시에 실패하다.

어찌저찌 개발을 맡아줄 팀원을 구할 수는 있었지만, 출시 기간 관리에 실패했다. 1월에 시작한 개발이 8월이 되도록 끝나지 않았다.

(이때의 나는 아주 부족했던 사람이라, 기억이 좋지는 않다. 물론 이때의 팀원들에겐 항상 고마워 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에)

다행히 투자 유치는 정상적으로 진행할 수 있었지만, 최종 IR 전날 개발 팀원이 이탈을 선언했다. 나는 발표 자리에서 투자를 받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개발자 한 명의 이탈로 많은 게 엎어지자,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개발에 대한 생각을 바꿔먹고, 직접 개발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복학을 신청해서 컴공 과목을 시간표에 채워넣고, 개발 동아리에도 들어갔다. 그리고 9월 초에 제품을 출시했다.

2. 개발적으로 성장했지만, 사업적으로는…

출시 즈음,다시 팀을 제로베이스에서 재구축했고, 운 좋게도 진짜 좋은 두 명의 팀원이 함께하게 되었다. (언제나 감사하고 있다)

당시 서버를 다 고치고(이날 배포 처음해봤다) 해가 뜨는 걸 보며 밀려오는 뿌듯함과 화남으로 휘갈긴 스토리. 심지어 델 노트북 + wsl으로 했었다니….아찔하다.

창업/학교/개발공부를 2:1:1로 섞어가며 2학기를 보냈다. 서버를 업데이트 하다가 실수로 터트리고 다시 새벽 내내 고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자동 배포의 필요성을 깨닫고 직접 구축하기도 하는 등, 개발적으로 가장 많이 성장한 학기였다.

하지만 사실 사업적으로는 전혀 성장하지 못한 학기였다. 제품의 혁신이 아닌 개선, 아니 그것도 아닌 보수에만 집중했다. 사업에 진전은 없었고, 제품은 그저 덜 고장나는 똥일 뿐이었다.

출시 후 CS로 인해 멘탈도 좋지 않았다. 서비스 내 익명 문자를 보내는 기능이 있었는데, 문자를 보내는 번호가 내 개인 번호였다. 모르는 사람들에게서 문자, 전화 그리고 조금의 욕설을 받곤 했다.

그렇게 2학기가 흘러가고 있었다.

3. 팀 확장과 바이럴 마케팅

시간은 2학기의 가운데를 지나고 있었다. 나를 제외하고는 당시 팀원들의 풀타임 여부가 불확실했기 때문에, 부족한 맨파워를 채우고자 리크루팅을 진행했다. 개발자 2 / 디자이너 1 이었던 팀이, 갑자기 개발자 4 / 디자이너 2 / 마케터 2 로 성장했다.

오랜만에 추억팔이 겸 넣어보는 산타테스트 대문. 산타가 귀엽다.

사상누각인지도 모르고, 멍청하게도 당시에는 뿌듯했다. “왜 이 사람이 우리 팀에 필요한지” 를 명확하게 답변하지 못한 채, 사람을 데려오는 것이 얼마나 큰 실책인지 몰랐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에)

물론 나의 부족함과는 별개로 이때의 팀원들에게는 감사하고 있다.

당시 유저 유입을 늘리면 워킹하지 않을까 하는 가설을 위해, “산타 테스트”를 만들었다. 100만명정도가 3일만에 유입되었고, 그 중 12만명이 앱스토어로 가는 링크를 클릭했다. 팀원들은 들떠했지만, 나는 기뻐할 수가 없었다. 12만 명 중, 실제 유저로 전환 된 건 단지 1000명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서버비는 550달러가…자세한 내용은 여기 )

다들 축하할 때, 사실 난 오히려 위기란 직감이 들었다.

4. 마지막 시도들과 실패의 기준

위기를 느낀 후, 나는 제품에 큰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학기가 끝난 후 방학에 들어가며 다양한 변화를 시도했다.

  • 완전 새로운 영역의 기능을 추가하고 (대신 인스타로 DM을 보내주는 기능)
  • LTV를 측정하기 위해 인앱상품/광고도 넣어봤으며
  • 유저 플로우를 아예 뒤엎기도 하고
  • 같은 기능이지만 앱 컨셉을 뒤엎기도 했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에)

하지만 큰 변화는 없었고, 팀원들은 지쳐갔다. 나는 그때야 비로소 “실패의 기준”을 정의하기 시작했다.

성공은 측정이 간단하다. 심지어 측정이 필요 없을 정도로 느낌이 딱 온다. ‘어 이거 왜이래?’ 가 나오기도 한다. 실패는 측정이 어렵다. 아예 지표가 바닥을 찍으면 오히려 좋다. 애매한 경우가 가장 큰 문제다.

유저는 조금씩이지만 꾸준히 들어오고 있었고, 실제 사용 또한 눈에 보였다. 그런데 이대로 가다가는 나도 모르는 채로 망한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천천히 끓는 물 속의 개구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 진행하던 투자 유치 과정에서 또다시 “No”를 외쳤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내가 이 제품을 만들기 시작한 이유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제품의 핵심 가설이 나왔고, 자연스럽게 “가설이 맞다면 달성해야만 하는” 지표가 결정되었다. 다시말해, 달성하지 못한다면 해당 가설은 실패한 것이고, 제품이 실패했다고 결론지을 수 있는 기준이 완성된 것이다.

해당 지표를 확인해본 결과 개선따위로 극복할 수 없을 정도로 기준에 훨씬 못미쳤고, 우리는 제품 혁신을 통해 지표를 올리고자 했다. 직감적으로 혁신을 통해서도 극복하기 힘들다는 걸 느꼈고, 그래서 망하든 잘되든 빠르게 결과를 확인하자 생각했다. (실제로 당시 친한 형들한테 말했던 목표는 빨리 달리고 빨리 망하기 였다.)

각고의 노력 끝에 다행히 지표는 크게 개선되었지만, 여전히 기준선은 넘지 못했다.

그래서 제품 실패를 결정했다.

만들기 시작한지 1년 3개월 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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